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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우즈' 미셸 위, 7년 만에 우승컵 들어올리다 - 문화일보

▲  미셸 위가 2009년 11월 LPGA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며 활짝 웃고 있다. LPGA투어 홈페이지

2009년 LPGA 풀시드 원년
오초아 초청대회서 2타차 정상
13세 아마대회 우승 이후 처음
프로 전향후 ‘거품 논쟁’ 벗어

2009년 11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정상급 36명이 멕시코의 과달라하라로 여행을 떠났다.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멕시코 출신 스타 로레나 오초아가 주최하는 이 대회는 2008년부터 시작됐고 36명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당시 박세리를 포함해 폴라 크리머, 모건 프레셀, 크리스티 커(이상 미국) 등 쟁쟁한 스타들이 출전 명단에 포함됐다.

LPGA 퀄리파잉(Q)스쿨을 통과한 뒤 2009년부터 풀 시드를 부여받은 재미교포 미셸 위도 초청장을 받았다. 미셸 위는 어릴 적부터 주목받았고 앞서 8월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미국 대 유럽 대항전 솔하임컵에서 캡틴 선택으로 참가해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미셸 위는 3라운드까지 10언더파를 쳐 커와 함께 마지막 날 챔피언조에 포함됐다. 바로 앞 조엔 크리머, 신인이던 신지애 등이 있었고 1타 차였다. 이글을 잡은 크리머, 미셸 위, 커가 12번 홀까지 공동선두였다. 미셸 위에겐 LPGA 풀시드 원년 첫 우승 기회였다.

▲  이인세 골프역사 칼럼니스트
미셸 위는 13세이던 2002년 아마추어대회 우승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동안 2위가 5차례나 됐다. 미셸 위는 LPGA투어 대회에서 여러 차례 컷을 통과했고 소니오픈 등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초청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0년 초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한창 주가를 날렸고, 미셸 위는 ‘여자 우즈’에 비유됐다.

미셸 위는 16세이던 2005년 프로 전향과 함께 나이키, 소니로부터 500만 달러씩 총 1000만 달러의 모델 광고를 계약했고 ‘1000만 달러의 소녀’로 불렸다. 하지만 미셸 위가 우승하지 못하면서 거품 논쟁이 일기도 했다.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등 동료 선수조차 실질적 성과가 없었던 그를 향해 톱스타가 되려면 우승을 하고 오라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미셸 위는 2개 홀을 남겨 놓고 커와 크리머에 1타 앞선 선두가 됐다.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2온을 노렸지만 공을 벙커에 빠트렸다. 미셸 위는 압박감 속에서 친 세 번째 샷을 홀 40㎝에 붙인 뒤 탭인 버디를 잡고 양팔을 치켜올렸다. 2타 차 승리였고, 자신의 LPGA투어 첫 우승이었다. 13세 이후 65차례 대회 출전 만에 이룬 성과였다. 미셸 위는 ‘위너 서클’에 합류했고,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우승 축하 맥주 세례를 받고 싶다는 소원도 이뤘다.

골프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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