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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교수의 눈물[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60〉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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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나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들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느라 바빴다. “교수가 강단에서 울었어.” 일본 메이지대의 데라시마 젠이치 교수가 울음의 주인공이었다. 2002년에 동료 교수와 공동으로 개설한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를 넘어서―스포츠, 평화, 공생’이라는 과목을 가르칠 때의 일이었다.

데라시마 교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종목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시련을 학생들에게 설명한 후 마지막으로 손기정의 자서전을 읽어주었다. “마라톤 우승은 나의 슬픔, 우리 민족의 슬픔을 뼈저리도록 되새겨주었을 뿐이었다. 나라가 없는 놈에게는 우승의 영광도 가당치 않은 허사일 뿐이었다. 나라를 가진 민족은 행복하다. 제 나라 땅 위를 구김 없이 뛸 수 있는 젊은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을 막을 자가 과연 누구인가?” 그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파 울었다. 손기정이 누구였던가.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는 일본 국기를 가슴에 달고 일본 국가를 들어야 했고, 여의도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환영행사는커녕 형사들에게 범죄자처럼 끌려가야 했던 조선 청년이었다.

그러나 손기정은 광복 후에도 증오를 품지 않았다. 오히려 스포츠가 국경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이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공동 개최를 응원한 건 그래서였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서 두 나라가 어떻게든 화해하고 공생의 길로 갔으면 싶었다. 데라시마 교수가 그를 강의의 중심에 놓은 이유였다. 메이지대는 손기정의 모교이기도 했다. 교수의 눈물은 후배 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학생들은 식민지배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강의 만족도가 90%에 달했다. 역사 속의 희생자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과 연민의 눈물이 눈부신 교육적 기능을 한 것이었다. 식민주의를 합리화하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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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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